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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「杨俊民」(明朝·户部尚书)는 중국明朝 역사상의 명인 입니다. 본 페이지에는 杨俊民의 생애 전기가 완전히 수록되어 있습니다: 杨俊民.
생애 전기
杨俊民。
明史卷二百十四 列传第一百二:
子俊民,字伯章,嘉靖四十一年进士。除户部主事,历礼部郎中。隆庆初,迁河南提学副使。万历初,历太仆少卿。父博致政,侍归。起故官,累迁兵部左侍郎署部事。时议撦力克嗣封。俊民言:“款未可遽罢。惟内修守备,而外勒西部,使尽还巢,申定市额,使无滥索而已。”议遂定。进户部尚书,总督仓场。十九年,还理部事。河南大饥,人相食,请发银米各数十万。或议其稽缓,因自劾求罢。疏六上,不允。小人竞请开矿,俊民争不得,税使乃四出。天下骚然,时以咎俊民。在事历三考,累加太子太保。卒官,赠少保。后叙东征转饷功,赠少傅兼太子太傅。
소개杨俊民에 대한 자주 묻는 질문
- 杨俊民는 누구인가요?
- 杨俊民는 明朝시기户部尚书이며, 생애는 정사 문헌 기록에 나타나 있습니다.
- 杨俊民는 어느 왕조에 살았나요?
- 杨俊民는 明朝 시기,관직 신분은 户部尚书입니다에 살았습니다.
- 杨俊民의 전기 자료 출처는 무엇인가요?
- 본 페이지의 전기 내용은 역대 정사와 공개 백과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·교정되었으며, 백과사전 항목 링크를 제공하여 참조 및 확인할 수 있습니다.
